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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마침표 (.)

사형대는 바벨의 가장 가파른 절벽 끝, 상계의 화려함과 하계의 음산함이 서슬 퍼렇게 교차하는 단애 위에 세워졌다.


도시의 모든 대형 모니터가 시인의 처형식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사형 집행관은 시인의 앙상한 목에 거친 마동줄 올가미를 걸었고, 그 처형대 옆에는 세이모어 백작을 비롯한 바벨의 자본가들이 고급 비단 의자에 앉아 이 피의 의식을 흡족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도시의 최고 독재자가 단상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민중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시늉을 하며 시인의 입가에 은빛 마이크를 들이댔다.


“크레스트 에스더. 너는 언어의 신성한 질서를 교란하고 국가의 자산권을 침해했다. 하지만 네가 가졌던 마지막 문학적 유산을 가벼이 여겨, 사형 집행 직전 단 하나의 단어를 합법적으로 구사할 권리를 주겠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든, ‘용서’를 구하든, 네가 가진 모든 미천한 자산을 털어 그 한 단어를 구입해 발화하라. 무엇을 말하겠느냐?”


도시 전체의 숨소리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하계의 퀴퀴한 슬럼가에서, 숨 죽인 지하 인쇄소에서, 피로 물든 거리에 주저앉은 민중들이 화면 속 시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시인이 입을 열어 단 어떤 단어라도 뱉는 순간, 그 단어는 즉시 국가의 통제 시스템에 귀속되어 검열되고 박제될 터였다.


시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술은 가물어 하얗게 갈라져 있었으나, 그 눈동자만큼은 상계의 그 어떤 보석보다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독재자의 오만한 눈을, 그리고 카메라의 차가운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시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칩이 이식되어 있던 혀의 뿌리를 이빨로 강하게 씹어 끊어냈다.


“……!”


붉은 선혈이 시인의 턱을 타고 세차게 흘러내려, 사형대의 순백색 대리석 바닥 위로 뚝, 뚝 떨어졌다.


거칠게 낙하하던 핏방울들은 바닥 위에 완벽하게 둥글고 거대한 점 하나를 그렸다.


그것은 글자가 아니었다.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던 위선의 문장을 완벽하게 종결짓는 가장 거대한 ‘마침표(.)’였다.


올가미가 단단히 당겨졌고, 시인의 신체가 허공으로 퉁겨져 올랐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바벨의 거대한 전산 시스템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마비되었다.


시인이 온 생애의 피로 찍어내린 마지막 마침표가, 도시를 지배하던 사상 검열 장치의 회로를 통째로 종식해 버린 것이다.


광장의 대형 모니터들은 일제히 아무것도 출력되지 않는 하얀 백색의 여백으로 변해버렸다.


광장에 모여 있던 민중들은 더 이상 침묵의 벽 뒤에 숨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속 깊은 수렁에 고여 있던, 법률이 차마 규정하지 못했고 자본이 차마 매기지 못했던 날것의 단어들을 일제히 함성으로 터뜨리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목소리가 거대한 해일이 되어 바벨의 철골 구조물을 뿌리째 흔들었다.


사형대 아래, 성난 군중의 틈새에서 필사가 카이는 교수대에 매달린 시인의 고요한 신체를 바라보며 품 속에서 날카로운 강철 송곳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창백한 팔뚝 위에, 시인이 남겨둔 거대한 여백의 자리마다 민중들이 울부짖는 진짜 단어들을 자신의 피로 깊숙이 새겨넣기 시작했다.


‘자유(Freedom).’

‘인간(Human).’

‘우리(Us).’


바벨의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높은 성벽 위로, 인간의 피로 쓰인 진짜 문장들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혹은 구원의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인류의 언어가 자본의 금고를 부수고 마침내 스스로의 존엄을 회복하는, 찬란한 새벽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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