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하얀 깃발의 광장
바벨의 중앙 광장에 거대한 침묵의 벽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이튿날 새벽이었다.
치안대의 검은 장갑차들이 대리석 바닥을 짓이기며 광장을 겹겹이 에워쌌다.
차가운 총검을 겨눈 진압병들이 방패를 세우고 대형을 유지했으나, 거리에 운집한 수만 명의 노동자와 천민들은 그 어떤 무기도, 그 어떤 선동적인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들의 손에는 오직 하얀 천 가닥과, 한 글자도 적히지 않은 텅 빈 종이 한 장씩이 들려 있을 뿐이었다.
“최종 경고한다.”
치안대장의 확성기 음성이 광장의 정적을 찢었다.
“불법 집회 및 허가되지 않은 단어의 집단 연상 행위를 전면 금지한다.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반복한다, 즉시 발포한다.”
민중들은 거친 협박에 대답하는 대신,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손에 든 하얀 종이를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수만 장의 백색 여백이 차가운 아침 햇빛을 받아 거대한 거울의 바다처럼 바벨의 감시탑과 권력층을 똑바로 비추었다.
그것은 활자의 결핍이 아니었다.
국가의 법률이 감히 포착하지 못한 세상 모든 분노와 슬픔의 언어를 품어 안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침묵의 폭동이었다.
단 한 마디의 음성도 발화되지 않았기에, 진압병들의 사상 검열 장치는 아무런 위반 주파수도 감지하지 못한 채 0%라는 무기력한 수치만을 깜빡일 뿐이었다.
“발포해! 저 불온한 침묵을 찢어발겨!”
상계의 감시탑 꼭대기에서 백작의 비명 섞인 명령이 무전기를 타고 하달되었다.
둔탁한 총성이 광장의 공기를 갈랐다.
선명한 붉은 피가 하얀 종이 위로 튀었고, 육체들이 낙엽처럼 쓰러졌다.
하지만 비명과 통곡조차 법으로 금지된 감옥 같은 도시였기에, 광장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하고 장엄했다.
쓰러진 이들이 흘린 피로 바닥이 물들어갈 때, 뒤에 선 이들이 그 자리를 묵묵히 채워 넣으며 하얀 종이를 더 높이 치켜들었다.
적히지 않았던 문장들이 무고한 피의 얼룩을 만나 비로소 역사라는 텍스트로 완성되고 있었다.
시인은 자신의 낡은 의자에 정좌한 채 멀리서 들려오는 둔탁한 파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의 목구멍 속에 심어진 감시 칩이 과부하로 붉게 과열되어 가죽을 태우는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거리에 모인 민중들이 하얀 여백을 읽고 스스로의 언어를 회복할 때마다, 시인의 뇌리에 새겨진 열두 개의 제한된 활자들 역시 통제를 잃고 광폭하게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제 문을 부수고 들어온 진압병들이 시인의 가냘픈 양팔을 거칠게 붙잡아 일으켰다.
시인은 끌려가는 순간에도 방바닥에 떨어진 낡은 펜을 보며 나지막이 미소 지었다.
책상 위의 원고지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그 비어있음이야말로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세상에 밀항시킨 가장 완벽한 걸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