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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여백의 전염

카이는 지하 인쇄소의 습기 찬 골방에서 밤마다 낡은 주물 윤전기를 돌렸다.


무거운 철제 실린더가 축축한 공기를 가르며 덜컹거릴 때마다, 저급한 타르 기름 냄새와 함께 하얀 종이들이 거친 비명처럼 쏟아져 내렸다.


종이 표면에는 시인이 남긴 열두 개의 초라한 활자들이 박제된 파리처럼 점점이 박혀 있을 뿐, 나머지는 눈이 시릴 만큼 광활한 백색의 영토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무제의 양식’이라 불렀다.


활자가 박탈된 자리야말로 가장 밀도 높은 문장이 들어앉을 공간임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 무중력의 종이 한 장이 새벽녘 슬럼가의 배급소 앞에 줄을 선 사내의 거친 손에 쥐어졌다.


평생을 “일, 밥, 집, 예”라는 어휘의 감옥에 갇힌 채, 매일 뺨을 때리는 혹독한 겨울 안개조차 제대로 묘사하지 못해 웅얼거리던 청소부였다.


그는 동틀 녘의 박명 속에서 종이를 빤히 응시했다.


사람. 오다.

아프다. 주다.


사내의 굳은살 박인 손가락이 활자와 활자 사이, 텅 빈 괄호와 광활한 여백의 질감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서늘한 백색을 만지는 순간, 법적으로 소유권이 박탈되었던 단어인 ‘눈물’과 ‘분노’, 그리고 결코 매매될 수 없다던 ‘내일’이라는 어휘의 형상이 사내의 뇌리에서 강렬한 정전기처럼 휘몰아쳤다.


목구멍에 심어진 주파수 센서는 발화되지 않은 사고의 맥박까지는 검열하지 못했다.


종이 위에는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으므로 감시 칩은 차가운 침묵만을 유지했다.


그러나 사내의 주름진 눈가에는 법이 허용하지 않은 뜨거운 눈물이 고여 흘렀다.


그것은 텍스트의 부재가 아니라, 존재의 범람이었다.


“…….”


사내는 말없이 떨리는 손으로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광부에게 종이를 넘겼다.


언어를 강탈당하고 가축처럼 신음하던 하계의 인간들이, 단 한 자루의 펜도 쓰지 않은 하얀 종이를 매개로 서로의 영혼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문장이 전염병처럼, 혹은 지하수처럼 바벨의 하부 구조를 잠식해 들어갔다.


같은 시각, 상계의 가장 높은 마천루에 위치한 세이모어 백작의 대리석 서고에서는 기이하고도 불길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백작은 자신이 수억 크레디트를 주고 독점한 고급 어휘인 ‘화려함’과 ‘영광’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그것들을 벽면에 순금으로 주조해 새겨두었으나, 그 황금 글자들이 소리 없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계의 민중들이 마음속으로 단어의 진짜 뜻과 슬픔을 복원해 내는 순간, 자본가들이 금고에 가두어 둔 단어의 박제된 껍데기들이 존재론적 균열을 일으키며 서서히 바스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황금의 표면이 부식된 석고처럼 흘러내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백작이 필사가 카이의 뺨을 가차 없이 후려치며 비명을 질렀다.


“내가 오늘 아침 중앙 경매장에서 낙찰받은 ‘새벽’과 ‘해방’이라는 단어가 왜 장부에서 흐려지는 거냐! 왜 내 서고의 단어들이 가루가 되어 흘러내리는 거냔 말이다!”


카이는 핏방울이 맺힌 입술을 감싸 쥔 채 차가운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나 그녀의 잘게 떨리는 입술 틈새로, 백작의 심장을 얼려버릴 만한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미소가 새어 나왔다.


“백작님, 단어는 금고에 가두는 자산이 아니라, 인간의 폐부로 쉬는 호흡입니다. 하계의 인간들이 마침내……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백작의 눈동자에 광기 어린 살기가 번졌다.


단어의 유실은 곧 지배력의 붕괴를 의미했다.


그는 즉시 중앙 정부의 야간 치안대에 하계 슬럼가를 통째로 초토화하라는 초동 조치 명령을 하달했다.


불법 연상 단어 유포자들의 혀를 남김없이 잘라버리라는 잔혹한 포고령과 함께, 철제 장갑차들의 엔진이 어둠 속에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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