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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자산 목록 12호

그들이 내 집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나의 장부에서 ‘새벽’과 ‘지평선’을 압수해 간 이후로, 나의 세계는 열두 개의 단어로만 직조된 좁고 차가운 감옥이 되었다.


국가 언어 자산 관리국 소속의 사법집행관들이 입은 방진복에서는 희미한 인쇄용제 냄새와 메마른 규소의 향이 풍겼다.


그들은 집안의 서책을 물리적으로 찢거나 불태우지 않았다.


그것은 구시대의 조잡한 방식이었다. 선임 집행관은 차가운 금속성 주파수 측정기를 내 성대 부근에 밀착시켰다.


칩이 이식된 혀가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벽면에 거치된 감시 모니터 속 붉은 잔고 수치가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사정없이 깎여 나갔다.


“크레스트 에스더 씨.”


집행관의 음성은 건조하게 부서지는 석고 가루 같았다.


“당신이 보유하고 있던 3등급 이상의 고유 어휘 ‘영혼’, ‘추억’, ‘바람’은 금일 정오를 기해 바벨 중앙 경매장에서 자산가 세이모어 백작에게 일괄 낙찰되었습니다.

대금은 당신의 부채 계좌로 자동 전산 상계되었습니다. 현재 당신 명의로 등록된 합법적 어휘는 총 12개입니다. 이를 초과하여 발화하거나, 타인의 독점 자산을 무단 복제·연상할 경우, 설설(舌) 신경을 영구 동결하는 ‘침묵형’에 처해집니다.”


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재가 아니라 기괴한 여백이었다.


오래된 서가에 꽂힌 시집들은 단어들이 전산적으로 소거되어 구멍이 숭숭 뚫린 어망처럼 변해 있었다.


‘사랑’이 저당 잡힌 서정시의 가닥들은 ‘나는 너를 [ ]한다’로 화해 버렸고, ‘혁명’이 박탈된 연대기에는 ‘민중들이 거리에서 [ ]를 펼쳤다’라는 텅 빈 공백만이 흉터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자본이 언어의 뼈대를 사유화한 도시 바벨에서, 가난은 곧 완전한 영혼의 거세를 의미했다.


나는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내게 남겨진 고작 12개의 어휘를 머릿속으로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날카로운 면도날을 만지듯 숨이 막히는 작업이었다.


밥, 일, 집, 예, 아니오, 가다, 오다, 아프다, 주다, 사람, 그리고 마침표와 쉼표.


이 초라한 벽돌 몇 개로 어떤 실존의 성벽을 쌓을 수 있단 말인가.


상계의 부유한 자들은 ‘찬란한’, ‘고귀한’, ‘영원한’ 같은 형용사들을 비단 망토처럼 두르고 거리를 활보했지만, 슬럼가의 천민들은 혀를 굴리는 감각조차 상실한 채 “밥, 일, 예”라는 어휘만을 가축처럼 되풀이했다.


말을 잃은 인간들의 눈동자는 빛이 도달하지 않는 깊은 해구처럼 어두웠다.


그때 방 내부의 정적을 깨고 ‘필사가’ 카이가 들어왔다.


그녀는 자본가들의 저택에서 그들이 구매한 사치스러운 어휘들을 조합해 위선적인 찬가나 연애편지를 대신 써주며 연명하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녀의 안색은 핏기를 잃은 대리석 같았고, 깃펜을 쥐던 손가락은 검은 잉크가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은 얼룩진 피에 젖은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카이는 말없이 내 앞에 낡은 양피지 한 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상계의 귀족들이 수천만 크레디트를 지불하고 독점한 단어들이 박제된 나비처럼 화려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선생님.”


카이가 귓가를 스치는 가을바람처럼 속삭였다. 감시 칩의 주파수 센서가 인지하지 못할 만큼 미세한 파동이었다.


“오늘 백작의 서고에서 보았어요. 그들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저 소유할 뿐이죠. ‘자유’라는 단어를 냉동 금고에 가두어 두고,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그 뜻을 사유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요.

단어가 숨을 쉬지 못하고 갇혀 있으니, 세상의 실재들이 풍화되고 있어요. 어제는 도시 동쪽의 가로수길이 통째로 흑백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푸르다’라는 단어의 소유권을 상실했기 때문이에요.”


나는 카이의 젖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단어를 유실해 가는 인류의 마지막 실존적 공포를 읽었다.


내가 가진 자산은 고작 12개의 단어뿐이었다.


‘자유’도, ‘푸르름’도, ‘저항’도 나의 장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펜을 쥐었다. 법이 허용한 가장 무기력하고 비참한 단어들을 종이 위에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적기 시작했다.


사람. 가다.

아프다. 주다.

일. 밥.


그리고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거대한 심연 같은 공백을 배열했다.


두 줄의 활자 사이에 손가락 세 개가 완전히 들어갈 만한 깊은 여백을 의도적으로 남겨두었다.


카이가 숨을 죽인 채 내 손끝이 만들어내는 하얀 영토를 지켜보았다.


“이게…… 대체 무엇인가요?”

“공백의 시(詩)다.”


내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성대에서 피 맛이 났다.


“그들은 내 입에서 ‘독재’를 빼앗았고 ‘혁명’을 압수했다.

하지만 카이, 이 하얗게 비어있는 무덤 같은 여백을 보아라.

글자와 글자 사이의 거대한 침묵, 이 가파른 쉼표들의 간격을 보아란 말이다.

법률은 적힌 글자만을 검열하지, 적히지 않은 침묵의 질량까지 검열할 수는 없다.”


나는 종이의 빈 공간, 그 서늘한 백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람들이 이 비어있는 자리를 응시할 때, 그들의 뇌는 빼앗긴 단어들을 스스로 길러내어 채워 넣게 될 것이다.

국가가 강제로 지워버린 ‘분노’를, 자본이 숨겨둔 ‘해방’을, 이 하얀 여백의 중력 속에서 스스로 떠올릴 것이다.

적히지 않았기에 결코 체포할 수 없는 문장.

활자 없는 텍스트. 이것이 우리가 시작할 마지막 폭동이다.”


카이의 눈동자에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이 서렸다.


그녀는 내가 건넨 12개의 단어와 거대한 침묵이 교차하는 원고를 소중한 유골함처럼 품에 안았다.


바벨의 가장 깊은 지하, 말을 잃은 자들이 모이는 음습한 광장으로 흘러 들어갈 인류의 마지막 성전(聖戰)이 비로소 서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창밖의 바벨은 거대한 무덤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굴복의 정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인과율의 폭발을 앞둔, 여백의 묵직한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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