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후기 (Epilogue: From the Author)
이 작은 이야기를 마치며, 나는 우리가 매일 공기처럼 들이쉬고 내뱉는 ‘말’들의 무게에 대해 생각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과잉된 언어의 호수 속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틈만 나면 채우는 무수한 텍스트, 알고리즘이 편집해 낸 자극적인 어휘들, 그리고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따라 교묘하게 오염되고 정제된 문장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무수한 말들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실어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단어를 잃어버리고,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문장을 검열하며,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잊어가는 디스토피아는 이미 우리 곁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 도시 ‘바벨’은 극단적인 우화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거울이다.
모든 가치에 가격표를 매기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끝내 인간의 사유와 언어마저 독점하려 들 때, 그에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영토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서 이 소설은 출발했다.
나는 그 답을 활자가 아닌 ‘여백’에서 찾고 싶었다.
쓰이지 않은 행간, 말과 말 사이의 서늘한 쉼표, 그리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묵직한 정적. 그것은 결코 패배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권력이 규정하고 재단한 시스템의 그물을 찢고 나오는, 가장 거대하고 포용력 있는 사유의 시작이다.
독자가 이 소설의 비어있는 문장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자유’와 ‘인간’이라는 단어를 길러냈다면, 저자로서 그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이다.
크레스트 에스더가 온 생애의 피로 찍어내린 마지막 마침표는 파멸이 아닌 또 다른 문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의 마침표 뒤로 이어질 수만, 수천만 민중들의 날것의 문장들이 독자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찬란하게 흐르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침묵의 무게를 믿고 이 거친 원고를 끝까지 함께 읽어내려 와 준 이름 모를 동반자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우리의 언어가 누군가의 금고 속에 갇히지 않고, 언제나 인간의 폐부 속에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