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0話
家に着いたのは、夜の九時をとうに回った頃だった。
집에 돌아온 건 밤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玄関の扉を閉める音が廊下に短く響き、消えていった後も、私は灯りをつけぬまま、しばらくそこに立ち尽くしていた。手を洗い、水を一杯だけ、口にした。真夏の夜の熱気は、忍び込む風の中にまで潜んでいて、街灯だけが、床の上にうっすらとした四角を静かに描いていた。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복도에 짧게 울려 퍼졌다. 불은 켜지 않았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손을 씻고 물을 한 잔 마셨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바람에는 아직 한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마루 위에 사각형 모양으로 떨어져 있었다.
ソファに腰を下ろし、ノートパソコンを開いた。開きっぱなしのYouTubeのタブを閉じ、お気に入りの中からカクヨムを探し出し、クリックした。年明けの公募新人賞に作品を送って以来、久しぶりの訪問だった。ただ、今回は書くために来たのではなかった。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어제 열어둔 유튜브 페이지를 닫고 즐겨찾기에서 카쿠요무를 찾아 클릭했다. 올해 초 공모전에 작품을 투고한 이후로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쓰러 온 것이 아니었다.
何かを始める前に、まず数字を見る。それは、仕事の中で染みついた癖だった。数字さえ見れば、次にどこへ踏み出せばいいのか、自然と勘が働いた。指先が迷いなく検索窓へ向かったのも、同じ理由からだった。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숫자부터 보는 것은, 일하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숫자를 보면 다음 걸음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감이 왔다. 손가락이 곧장 검색창으로 움직인 것은, 같은 이유에서였다.
カクヨム ジャンル別 PVランキング
카쿠요무, 장르별, 조회수 기반 순위
スクロールするたびに、タイトルはどれも互いに似通っていく。異世界転生もの、社畜復讐もの、悪役もの。『最強サラリーマン、異世界で無双する』、『上司に切り捨てられたが、異世界で王になった』。現実で閉ざされた出口を、別の名を持つ世界でこじ開ける──そんな物語たちだった。
화면을 내릴수록 제목들이 서로를 닮아갔다. 이세계 전생물, 사축 복수물, 악역물. 〈최강 직장인이 이세계에서 무쌍을 펼치다〉, 〈상사에게 버려졌지만 다른 세계에서 왕이 되었다〉. 현실에서 닫힌 출구를, 다른 이름의 세계에서 여는 이야기들이었다.
読者層のデータを開いた。主な読者層は、十八歳から三十五歳の男性だった。アクセス全体の七割が、スマートフォンからだった。そしてどこかに、文字が詰まっているだけで読者は離れていく、という一文が添えられていた。
독자층 데이터를 열었다. 주요 독자는 18세에서 35세 사이의 남성이었다. 전체 접속의 7할이 모바일에서 이루어졌다. 문장이 빽빽하면 그것만으로 이탈률이 오른다는 문구도 있었다.
流行りのジャンルを書けば、読者はきっとつくだろう。だが、その読者が読んでいるのは私なのか、それとも私が作り上げた殻なのか──その違いは、数字のどこにも書かれていなかった。タブを閉じる。また別のタブを開く。ライトノベルの書き方について読んでいるうちに、何かが胸の隅に引っかかるのを感じた。
유행하는 장르를 쓰면 독자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그 독자가 나를 읽는 것인지, 내가 만든 껍데기를 읽는 것인지, 그 차이는 수치 안에 없었다. 탭을 닫았다. 다른 탭을 열었다. 라이트노벨 작문법에 대한 페이지를 읽다가, 무언가가 가슴 한쪽에 걸렸다.
文は短く、展開は速く、テンポを止めない。そして結末では、必ず何かを解消すること。それを読みながら、自分の書く文章がどういうものなのかを、逆に確かめている自分がいた。何かを解消するよりも、そっと残しておく方が性に合っていた。感情にラベルを貼るより、感覚へと立ち返る方が、私には楽だった。短く切るよりも、長く深い呼吸のほうが、この手には馴染んでいた。ライトノベルを書くと決めることと、実際に書けるという確信は、まるで別の問題なのかもしれない。
짧은 문장, 빠른 전개, 여백을 두지 않는 것, 결말은 반드시 무언가를 해소하는 것. 그것들을 읽으면서 내가 쓰는 문장이 어떤 것인지를 반대로 확인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소하기보다 남겨두는 쪽이 자연스러웠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대신 감각으로 돌아가는 것이 편했으며, 짧게 끊는 것보다 길고 깊은 호흡이 손에 맞았다. 라이트노벨을 쓰겠다는 판단과, 실제로 쓸 수 있다는 확신은 전혀 다른 문제인지도 몰랐다.
ノートパソコンの光が、手の甲にうっすらと落ちている。
노트북 화면의 빛이 손등 위에 옅게 떨어졌다.
部屋はさっきよりも少しだけ暗くなっていた。街灯が床に描いた角度をわずかに変えていて、窓を越えてくる夜風には、まだ熱がまとわりついていた。その風に、古びた木造家屋が、かすかに軋んだ。
방은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워졌다. 가로등 불빛이 마루 위에 만든 사각형도 각도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바람에는 여전히 열기가 섞여 있었고, 그 바람을 타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そうして、しばらくそのまま座っていた。周囲の音が静まり、秒針の音だけが残るころ、私はノートパソコンを閉じる代わりに、真っ白な文書をもう一つ隣に開いた。そして、三つの物語の構想を練り上げていった。最後のタイトルの下で、カーソルが点滅していた。
그렇게 얼마간 앉아 있었다. 주변의 소리가 잠잠해지고 초침 소리만 남을 즈음, 나는 노트북을 덮는 대신 빈 문서 하나를 옆에 띄웠다. 그리고 그 안에 세 편의 구상을 나란히 적어 내려갔다. 마지막 제목 아래에서 커서가 깜빡였다.
一つの画面から次の画面へと視線を移しては、また最初へと戻る。それを繰り返しながら、私は何かを見定めようとしていた。それは、良い物語を選ぶ作業ではなく、どちらが読者の反応を得られるかを見積もる作業だった。
한 화면에서 다음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무언가를 가늠했다. 좋은 이야기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어느 쪽이 반응을 얻을지 예측하는 작업이었다.
『復讐の錬金術師』は、負けるはずのない手札だった。裏切り、転落、覚醒、復讐。読者が求める順序は、すでに決まっている。あとは、その通りに書いていくだけでいい。問題は、それを知っているのが私だけではない、ということだった。同じ手札を握る作家がどれほどいるかは、ランキングの一ページ目を見ればすぐにわかった。素早く切り込んでいかなければ、読者の目に留まる前に埋もれてしまう。だとすれば、結局のところ、文章の力で先んじるしかない。
『복수의 연금술사』는 질 수 없는 패였다. 배신, 추락, 각성, 복수. 독자들이 원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고, 그 순서대로 쓰기만 하면 됐다. 문제는 그걸 아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같은 패를 쥔 작가가 얼마나 되는지는 순위표 첫 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빠르게 치고 들어가지 않으면 독자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묻힌다. 그렇다면 결국 문장으로 앞서야 했다.
『リセット&リスタート』は、少し毛色が違っていた。転生した後に華々しく逆転するのではなく、崩壊した国を立て直しながら、少しずつ癒えていく物語だ。ランキングを埋め尽くす二十代前半の読者よりも、仕事を終えて帰り、そのまま倒れ込むように横になる人たちにこそ、届く気がした。今日もまた辞表を出さずに済んだ、それだけで、よく耐えたと思えるような層だ。年齢で言えば、私とそう変わらない世代が、肩の力を抜いて読める小説になるはずだ。
『리셋&리스타트』는 결이 달랐다. 전생 후에 화려하게 역전하는 대신, 무너진 국가를 재건하면서 천천히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순위표를 채우는 이십 대 초반보다는, 퇴근하고 돌아와 그냥 누워버리는 사람들에게 가닿을 것 같다.오늘도 사직서를 쓰지 않은 것만으로 잘 버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이로 치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읽기 편한 소설이 될 것이다.
『ウィロウブルックの木工房へようこそ』は、この中でいちばん説明しづらい。転生こそするが、戦闘は一切ない。異世界に根を下ろした木工職人が、客からの依頼を受けながら、少しずつ自分の居場所を築いていく──そんな物語を書くつもりだ。冒頭は、大学時代の木工房での経験をもとにする予定だ。おがくずの匂い。木目を読み違えた時に木が立てる、あの音。仕上げ材を塗り終えて、一日をじっと待つ時間。序盤の閲覧数が伸びないことはわかっていながらも、この構想だけを、いちばん長く見つめていた。
『윌로브룩의 목공방에 어서오세요』는 설명하기가 가장 어렵다. 전생은 하지만 전투는 없다. 이세계에 정착한 목수가 손님들의 의뢰를 받아가며 천천히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도입부는 대학 시절의 목공장 경험으로 쓸 생각이다. 톱밥 냄새, 결을 잘못 읽었을 때 나무가 내는 소리, 마감재를 바르고 나서 하루를 기다리는 시간. 초반 조회수는 낮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구상을 가장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
ここまで分析を終えると、三つの構想をもう一度、カクヨムのランキングと突き合わせた。軽く読めて、代理満足を得られる作品。現実では平凡な会社員だった者が、二度目に得た機会で活躍する話。今どんな小説を書くべきか、その答えはすでにランキングの中にあるようだった。
여기까지 분석을 마치고 나서 세 구상을 다시 한번 카쿠요무의 순위표와 대조했다. 가볍게 읽기 좋고 대리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작품. 현실에서는 평범한 회사원이 두 번째로 얻은 기회로 활약하는 이야기. 지금 어떤 소설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순위표에 나와 있는 듯했다.
同じジャンルの中でさえ、文章の質が差を生む。それが問題だった。
같은 장르 안에서도 문장의 질이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韓国人が日本語で綴ったブログを読んでいて、ある一文に、ふと引っかかったことがあった。間違った文ではなかった。不自然な文でもなかった。ただ、何かが伝わってこなかった。その文を書いた人は、自分の内側の感覚を、日本語へと移し替えようとしていた。その移し替えの途中で、何かをこぼしてしまったのだと思う。そのページは、最後まで読まなかった。異国の言葉で、膨大な物語を書き上げるということは、気の抜ける瞬間が一度もない作業である。文法であれば、辞書で埋めることができた。だが、どの場面で人物が躊躇うのが自然なのか、どの瞬間に沈黙が重みを増すのかは、誰にも尋ね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そうした感覚のずれまでは、辞書も埋めてはくれない。
한국인이 일본어로 쓴 블로그를 읽다가 문장 하나에서 걸린 적이 있었다. 틀린 문장이 아니었다. 어색한 문장도 아니었다. 다만 그 문장을 쓴 사람이 자기 안의 감각을 일본어로 옮기는 순간, 무언가를 빠뜨렸다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 페이지를 끝까지 읽지 않았다. 타국의 언어로 방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한순간도 집중력을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문법이야 사전으로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장면에서 인물이 머뭇거려야 자연스러운지, 어느 순간 침묵이 무거워지는지는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그런 감각의 어긋남까지 사전이 메워주지는 않는다.
日本語で小説を書こうとする私もまた、その問題から逃れ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일본어로 소설을 쓰려는 나도 그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小説新人賞に落ちた理由さえわかれば、もう少し楽だったのかもしれない。一次選考すら通らなければ、選評はおろか、落選を知らせるメールすら届かない。私が面白いと信じるものと、審査員が面白いと判断するものとは、まるで別物だった。明確な理由もわからないまま、同じことばかり繰り返している。自分が好きで書くことと、誰かに選ばれるために書くことでは、そもそもの物差しが違っていた。
공모전에서 떨어진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한결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1차조차 통과하지 못하면 선평은커녕 낙선을 알리는 메일도 오지 않는다. 내가 재미있다고 믿는 것과 심사위원이 재미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달랐다.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같은 과정만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서 쓰는 것과 남에게 선택받기 위해 쓰는 것은 애초에 잣대가 달랐다.
時計に目をやると、とうに深夜零時を回っていた。三つの構想を行き来しながらシノプシスを直しているうちに、時間はいつのまにか、そうして流れていった。目がしょぼつき、こめかみの重さが、首の後ろまで広がっている。数年前だったなら、徹夜しても翌日はけろりとしていただろうが、最近は一晩の無理がそのまま、何日も尾を引く。
시계를 확인하니 자정을 훌쩍 넘겨 있었다. 세 편을 오가며 시놉시스를 고치는 사이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눈이 뻑뻑하고 관자놀이의 뻐근함이 뒷목까지 번졌다. 몇 년 전이라면 밤을 새워도 다음 날 멀쩡했겠지만, 요즘은 하룻밤 무리한 피로가 며칠씩 남았다.
三つの文書を、それぞれ別のフォルダに保存しようと、保存ダイアログを開いた。名前順に並んだフォルダのリストをスクロールしていた手が、ある名前の前で、ふと止まった。中でも、いちばん古い一つ──『花園の子どもたち』。更新日は、一月二十三日のままだった。
세 문서를 각각 다른 폴더에 저장하려고 저장 창을 열었다. 이름순으로 정렬된 폴더 목록을 훑어 내리던 손이 어느 이름 앞에서 문득 멈췄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폴더 하나, 『花園の子どもたち』. 수정일은 1월 23일 그대로였다.
これといった目的もなく、ただ書きたいという気持ちだけで書いた文章だった。何年も手元に置いたまま、年明けの公募に、押し込むようにして送り出した作品。数字によって証明されたことなど一度もない物語が、数字ばかりを覗き込んでいたこの画面の片隅に、ひっそりと残っていた。
아무런 목적을 두지않고 그저 쓰고 싶어서 썼던 글이었다. 몇 년을 붙잡고 있다가 올해 초 공모전에 밀어 넣듯 보냈던 작품. 숫자로 증명된 적 없는 이야기가, 숫자만 들여다보던 화면 한쪽에 남아 있었다.
同じ物語を、今の自分ならどう書き直すだろうか。フォルダを開き、新しいファイルを作って、タイトルを打ち込んだ。
같은 이야기를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다시 쓸까. 폴더를 열어 새 파일을 만들고 제목을 적었다.
『花園の子どもたち_修正案』。
元のファイルを開いた。案外、すらすらと読めた。次の一文も、その次の一文も。直すべきだということは、わかっていた。だが、どの一文にも、手を加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書いていたあの時も良かったし、今こうして読んでも、やはり良かった。
원본 파일을 열었다. 잘 읽혔다. 다음 문장도, 그다음 문장도. 고쳐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어느 문장에도 손을 댈 수 없었다. 쓸 때도 좋았고, 지금 읽어도 좋았다.
そのままノートパソコンを閉じ、ソファーに深く身を沈めて目を閉じた。どこから、何を、どう手を入れればいいのか。見当すらつかなかった。プロットの運びが悪いのか、それとも物語そのものに、そもそも人を惹きつける力がないのか。見極めがつかなかった。誰か、利害のない第三者の、飾らない感想が欲しかった。
나는 그대로 노트북을 닫고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소설의 전개가 문제인 건지, 근본적으로 이야기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제3자의 솔직한 감상이 필요했다.
まず友達を作るところから始めるべきなのか、真剣に悩んだことがあった。元来、人見知りな質で、日本に来てからはそれがいっそう際立つようになった。それなのに、見ず知らずの相手との会話のほうが、かえって気楽だった。その心地よさがいつしか毒に変わり、心を許せる人間を一人として、そばに置けずにいる。それが今の悩みだった。
그러고 보니, 친구부터 사귀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원래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는데, 일본에 오고 나서 그 버릇은 더 심해졌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오히려 편했다. 문제는 그 편함이 독이 되어, 정작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람 하나 곁에 두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数日前の商談の席でも同じだった。向かいに座る担当者の口元が、かすかに緩んだ。だが、目元には笑いじわひとつ浮かばなかった。私にはもう分かっていた。あの笑みはただの愛想にすぎず、この話が形になることはない。ただ、そう悟っていた。質問に答えるたび、彼の視線がすっと左下へ落ちるのも見て取れた。「前向きに検討させていただきます」。この言葉が、はじめから嘘であることも。
며칠 전 상담 자리에서도 그랬다. 맞은편에 앉은 담당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눈가에는 주름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이미 알았다. 저 웃음은 그저 사교적인 태도일 뿐, 이 이야기는 성사되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질문에 답할 때마다 그의 시선이 왼쪽 아래로 슬쩍 떨어지는 것도 보였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라는 말, 그 말이 처음부터 거짓이라는 뜻이었다.
なぜ分かるのかと聞かれても、うまく答えられる自信はない。父の仕事の都合で転校を繰り返した頃、新しい教室に馴染む前に、まず相手を見極める癖がついた。そこに父の同僚たちとの食事の席まで重なって、その癖はいっそう根を張っていった。大人たちの間に座りながらも、私はいつも横目でうかがっていた。誰が本音で笑っているのか、誰がただ愛想で笑っているだけなのか。あの頃の勘が、今も体のどこかに残っている。初対面の相手には、わざといくつもの話題を振ってみる。経済、時事ニュース、世間を騒がせている出来事——あれこれ並べ立てては、表情が揺れる瞬間を注意深く窺う。どの話題で目の色が変わるのか、どのくだりで視線が濁るのか。それを頼りに、相手がどんな人間なのか、おおよその輪郭を描いていく。
이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아버지의 일 때문에 전학을 자주 다니던 시절, 새 교실에 적응하기도 전에 상대부터 파악하는 버릇이 들었다. 거기에 아버지 직장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까지 겹치면서, 그 버릇은 뿌리를 더 깊게 내렸다. 어른들 틈에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늘 곁눈질로 살피고 있었다. 누가 진심으로 웃고 있는지, 누가 그저 웃는 낯만 하고 있는지. 그때 몸에 붙은 눈치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일부러 여러 화제를 던져본다. 경제, 뉴스, 요즘 화제가 되는 사회 이슈 같은 것들을 늘어놓는다. 그러고는 표정이 흔들리는 지점을 살핀다. 어느 주제에서 눈빛이 살아나는지, 어느 대목에서 시선이 흐려지는지. 그렇게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의 밑그림을 그린다.
この輪郭は、自分でも驚くほど的中した。面接の結果も、たいていはその場で見当がついた。面接官たちが、際立って感情を隠すのが下手だったわけではない。人は、思っているよりずっと、他人に関心がなかった。自分の感情ひとつ隠すことにさえ、労力を割こうとしないほどに。
그 밑그림은 신기하리만치 잘 들어맞았다. 면접 결과도 웬만하면 그 자리에서 짐작이 갔다. 면접관들이 유독 서툴러서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자기 감정 하나 숨기는 데도 마음을 쓰지 않을 만큼, 무심했다.
日本に来たばかりの頃は、この感覚さえ鈍っていた。表情の読み方がまるで違い、沈黙の重みにも慣れなかった。会社でもまれながら働くうち、ある一つの型が、少しずつ見えてくるようになった。初対面では折り目正しかった人たちが、相手を自分より弱い立場だと見なした途端、顔色を変えた。不快さを隠そうともせず、まるで私などいないかのように振る舞い、口数は目に見えて少なくなった。欲しいものを手に入れられなかった子供が、拗ねてみせる姿と何ら変わらなかった。
일본에 처음 왔을 때는 이 감각마저 무뎌졌었다. 표정이 다르게 읽혔고, 침묵의 무게도 낯설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부대끼며 일하는 사이, 어떤 패턴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깍듯하던 이들이, 상대가 을의 자리에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표정을 바꿨다. 싫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나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으며,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한 아이가 토라지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ある日の夜、一艘の小舟に身を委ね、果てしない大海原を漂っているような気がした。行き場を失った舟は、夜通し当てもなく進み続けた。甲板の上、小さな影に身を縮めているあの自分を、私はどこか遠くから、じっと見つめていた。
어느날 밤, 나룻배 한 척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배는 밤새 정처 없이 나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 배 위, 작은 그늘 아래 몸을 웅크린 나를 저만치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何をそんなに恐れているのだろうか。
무엇이 무서워서 저러는 걸까.
私にとって人というものは、そもそも慣れなければならない相手だった。観察し、見極め、すっかり理解し尽くしてから、ようやく心を許すことができた。いっそ動物園の檻の中で、虎と暮らすほうがまだ気楽なのかもしれない。
내게 사람이란, 처음부터 적응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관찰하고, 파악하고, 완전히 이해한 뒤에야 비로소 곁을 내줄 수 있었다. 차라리 동물원 우리 안에서 호랑이와 함께 지내는 편이 덜 피곤할지도 몰랐다.
考えがそこまで及んだところで、頭痛が押し寄せてきた。すべてが面倒になってきた頃、重い体を引きずるようにして洗面台の前へと向かった。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두통이 밀려왔다. 모든 게 다 귀찮아질 무렵,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면대 앞으로 걸어갔다.
今日という一日も、自分と他人の境界線の上に立ち尽くしたまま、眠りについた。
오늘 하루도 그렇게, 나와 남 사이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