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양작이 입학한 Y시립 K초등학교는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백년 이상 이어지는 목조 교사이다
시골이라고 해도, 이 당시 이미 Y시내에서도 이러한 목조의 교사는 거의 볼 수 없고, 철근 콘크리트의 근대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교가에 '성기 있는 역사'라고 칭찬받고 있는 것처럼, 긴 역사를 느끼게 하는 풍정 넘치는 초등학교였다.
다만, 타교의 아동 중에는 이 목조의 낡은 초등학교를 바보로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그것이 양작들에게 콤플렉스를 심어주고 있었다.
아직도 양작들의 나이에서는 이런 '와비 녹'이라는 시든 풍정의 장점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역사 있는 초등학교도, 쭉 「체육관」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양작이 입학하는 전년에, 근대적이고 오각형의 지붕을 가진, 드문 형태의 체육관이 생겼다.
위치적으로는, 목조 교사로부터 도로를 끼고 남동의 방각・・・이미지로서는 「하스 맞은편」의 떨어진 장소에, 그것은 지어졌다.
통학로 옆에 세워져 있었지만 농구 등 실내 체육 수업 때는 아동들은 일일이 교문을 나와 도로를 건너 50미터 정도 동쪽으로 걸어갈 필요가 있었다.
교사로부터는, 직선 거리로 200미터 정도는 있었을까.
K초등학교 서쪽에는 'K성터'가 있으며, 이것이 전국시대에 있던 성의 흔적이다.
동쪽에는 선로 건너편에 K신사가 있고, 그것을 넘어 수백 미터 앞에 양작의 집이 있다.
두 킬로 이상의 길을, 양작은 6년간 매일 도보로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 학교 사이에는, 밭이나 논, U강이라는 하천도 있어, 자연 가득한 통학로를 양작은 도초를 하면서, 매달려 등하교하고 있었다.
학교와 선로 사이에, 양작이 3학년 때에 주판이 생겼다.
이 당시 주판이 '아동의 흔들림'으로 여겨지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인지, Y시에서도 그곳에 주판이 태어났다.
지금 말한다면, 「학습 학 감각」일까.
주판에서 K 초등학교보다 작은 게임 센터가 생겼다.
···양작이 4학년 때다.
원래는 초등학교의 체육 착용이나 운동모, 문방구 등을 다루는 이른바 '뭐든지 가게'였지만, 어떤 변절이나 갑자기 게임센터를 경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 센터의 헛소리에는, 당시 몇몇의 과자점이 존재해, 아이들의 교류나 휴식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K 초등학교 앞에는 문방구가게가 한 곳 있어 K 초등학교의 아동 노트나 연필 등의 편리한 구입처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빨리 자라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