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움이 있었다
율도(栗島)는 해동공화국(海東共和國) 신석현(新潟縣) 북서쪽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동해에 있어서 그 자연과 로 유명한 이 섬은 전쟁 후 바삐 옛날 북적을 되찾는 중이었다.
바닷가에 머문 배에서 관광객 무리가 내려다가 호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호화스러운 무늬 옷이 전쟁 동안은 금지되었기에 누구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동료인 오오마에 사토시(大前聡)가 쿠라타와 동행했다. 오오마에도 지난 전쟁 때 구 일본주에서 여러 전투를 겪은 것이다.
오오마에는 얼핏 관광객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쿠라타에게 돌렸다.
나그네는 모두 즐거운 표정을 띄우는데, 오랜만의 자유로운 여행을 만끽하려는 마음이 이 친구에게는 없다.
섬의 남동쪽 소목동(小木洞) 항만에 다다르자 둘은 이 나라가 독립으로 떠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닷가 시장에 백성이 모여서 늙은이가 해동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태어난 것을 축하해서 국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극기와 비슷한 깃발.
누구나 전쟁이 일으킨 여러 비극을 잊고 싶어하는 것이다.
실은 쿠라타도 그들과 함께 저 무시무시한 나날을 잊고 싶었다.
이 섬의 백성과 힘을 합쳐 단도군과 싸웠는데 쿠라타는 이 백성을 남이 아닌 동포로 보게 되었다.
오늘, 쿠라타는 단 하나의 나그네로 이 섬에 왔다.
단도 정부가 놓인 한반도에 덤벼들기 위해 열도에 왔을 때, 구 일본주 - 해동 -에는 해방자로 받아들인 자도 침략자로 거부한 자도 있었다. 단도 지배로 인한 해도 이익도 아주 컸기 때문이다.
해동에는 고천원 병사를 싫어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이 율도는 고천원군에 맞서 싸운 이가 많다. 그 덕에 섬의 주민은 대충 고천원인을 환영했다.
먹은 꼬치구이 맛이 안 잊혀져서 그 가게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택해야 하고 싶은 일을 이룰 수가 있다.
쿠라타의 걱정을 말리듯 오오마에는 유인했다.
"낚시 가자. 너도 하고 싶었지?"
"맞아. 그때 먹은 물고기도 참 맛있었네." 조금만 미소를 지우며 쿠라타는 말했다.
문득 그는 지난 나날을 돌이켰다. 간신했던 결코 친친하지 못하지만 그리운 나날.
한밤중과 총성.
끝이 안 밝혀지는 싸움에 피곤해서 깊이 힘들 때 그가 동료들이 꺾이지 않도록 몇번이나 듣게 하더라.
"이에도 하느님은 끝을 주겠다."(Dabit deus his quoque finem.)
조용하지만 강한 그 인용에 언제나 오오마에는 마음을 위로했다.
쿠라타는 이 여행을 그저 기뻐하지는 못했다.
동네를 걸다 보니 건물에는 여기저기 보이는 총알 터가 많이 남아 있는 걸 목격했다. 그걸 볼 때마다 쿠라타는 싫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마음에 상처를 생긴 채 차마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지난 자연재해로 보는 것으로 피하려고 하던 것이다.
하지만, 쿠라타는 그들과 달리 이 전쟁을 사람끼리물에는 총알 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쿠라타는 싫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마음에 상처를 생긴 채 차마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지난 자연재해로 보는 것으로 피하려고 하던 것이다.
하지만, 쿠라타는 그들과 달리 이 전쟁을 사람끼리 일으킨 일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이성과 악의에 따라 이 사태를 초래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쿠라타는 전쟁을 이긴 나라 국민으로 역사를 바로 마주보고자 했다.
고천원에도 단도가 지배하던 나라에도 희생된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때 쿠라타는 아는 전쟁에서 죽은 영웅 영혼을 떠올려서 숙연한 마음에 몰렸다.
이미 이 율도에 일본 시대를 뒤지기가 어렵다. 예부터 홍길동이 끝에 이 섬에 다달랐다고 주민은 이야기했다.
사도가시마라는 이름도 문학 상 아칭에 불과하다.
이 율도는 쿠라타가 어렸을 때 본 옛 일본의 모습과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섬에 원래 있었을 전설이나 문화는 한반도에 온 것에 대체하며 이 섬에 사는 사람에서 일본국 때 추억은 모두 가셔버렸다.
"홍길동이 다다른 전설이 남은 땅"이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었다. 단도 때 세워진 석비다.
쿠라타에게는 이것도 긴 지배 부스러기로 보인다.
아마 예부터 이 섬에 살던 주민은 단도 정책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역사적 깊이를 전하기 위해 전설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홍길동은 가상 인물이 아닐까?"
"아니, 그놈들에게 말하지 마."
사토시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 그 오류를 고칠 수도 없다. 처음에 거짓말이었던 전설이 정착되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쿠라타 집 벽엔 역사나 지리에 관한 책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고금동서 문학에서 외울만한 문구를 모은 책은 쿠라타에게 인용하는 버릇을 함양시키던 것이다.
그리고 지도와 도감을 통해 그는 일찍이 있었던 일본국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가신 번성했던 나날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 역사를 알면 알수록 쿠라타는 지난 영광을 부활시키려는 사람이 없는 것에 노했다.
먼 옛날 여기서 온 사람의 피가 몸에 흐르는데 이 땅을 사랑해 마땅한 게 아닌가? 그런데 모두가 이 열도를 낯선 땅으로 봐서 반도와 같이 낮춘다.
쿠라타는 자신이 뿌리섬에서 바다를 넘어 북해도에 건넌 자 후손이라 믿었다.
북해도에 이 나라에 조상이 있었을 수 있는데, 그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이 섬에는 새로운 것만이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도 새로운 것이다. 동일한 조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오마에는 쿠라타와 달리 열도로의 관심이나 호기심은 얕았다.
그는 죽을 곳을 찾아 의사 - 솔직히 말하면 "총알받이"로서 -스스로 열도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태어나서부터 어두운 시대를 살아간 오오마에에게는 적극적으로 살고자 하는 뜻이 없었다.
그런데 쿠라타가 때때로 알리는 이야기로 간신히 살아갈 힘을 지니게 되었다.
싸움이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 모든 것이 풀린 게 아니다.
이 나라는 단도에서 독립하기는 했지만, 그 독립은 온 국민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다. 그건 일부 사람만에게 이로운 독립이다.
해동이라는 발해 별칭 해동성국(海東盛國)에 비롯한다. 요컨대 정부는 일본에 비롯된 것을 배제하련다. 이 싸움에 이긴 고천원조차 그 선택을 반대하지가 못했다.
먼 옛날, 고천원과 해동은 같은 나라였다. 반도에서의 큰 군대가 바다를 넘어 친략하기 전에는... .
그렇게, 해협에는 바다밑보다 깊은 단절이 있다.
단도가 이 열도에 남긴 영향은 작지 않다.
단도는 고천원에 대비하여 너무나 길이 열도를 개조했다.
열도 토박이말 이름도 한국어 발음으로 대체되었다.
율도에 가까운 부산(富山)은 반도 도시 부산(釜山)과 헷갈리지 않도록 풍산(豊山)으로 개칭되었다.
그 누가 이 섬을 옛날 이름으로 부르는가? 그런 건 겨우 단도의 왜곡 교육과 백성의 무관심을 도망친 드문 사람 밖에 없다.
백년을 두번 겪은 후, 일본주는 단도 - 단도 영토를 넘어 계림권(鷄林圈) -의 일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계림권, 그리고 거기서 계림인(鷄林人). 단도는 한반도 바깥에 수많은 이민을 흩었다.
단도가 사라졌는데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차피 해동정부도 단도 뜻을 이어 반도인 세계관 속에 이 열도를 포함하게 될 생각이다.
독립했다 한들 누구에게나 살기 쉬운 시대가 오는게 아니다.
오히려 지배자에서 풀린 아이끼리 극심한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열도에서 터지다니.
인류가 각각 문명을 만들어내서부터 반도와 열도는 그 동안 전쟁을 이어왔다. 그리고, 반도가 열도에 이겼다.
한반도 밖에 퍼진 계림인과 원주민의 차이를 낳아버렸다. 새로운 화근이 생겼을 뿐.
그날은 소목동 한복판에 위치한 부여 호텔에 숙박하기로 했다.
일본 시대부터 호텔이 있었던 자리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윽고 깜깜한 밤이 섬을 찾았다. 창문을 통해 쿠라타는 도시를 들여다봤다. 전쟁 중 총알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지내었기 때문에 이렇게도 고요한 밤은 그에게 처음이었다.
위치한 호텔은 호화스럽지 않지만 한가로이 쉴 수가 있는 곳이다.
오오마에는 빨리 내일이 오면 되듯 멋대로 방 안을 걸었다.
쿠라타는 털어놓기로 했다.
"이 섬은 크게 바뀌었어."
"맞아. 바뀌었다. 모두가 바뀐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던데."
쿠라타는 입을 열었다.
저절로 로마인의 노래 한 마디가 머리속에서 떠오른 것이다.
트로이아 사람 모습은 일본인이었던 고천원인과 비슷하지 않을까.
"Fuit troes. Fuit Ilium." 개탄을 힘껏 담아서.
"무슨 일이야?" 좀 놀란 오오마에.
"우리는 트로이아에서 내쫓긴 오디세우스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면 고향을 잃어야 했어."
오오마에는 말했다.
"우린 그대로 고향을 잃었고, 일본이 없으며 고천원과 해동이 있어."
더욱 강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다.
"일본의 이름이 행정구역으로도 없어졌지! 이게 개탄스러운 게 아닌가?"
그래도 오오마에는 냉정하게.
"정신 차려."
모든 고천원인이 오오마에 같은 인간인 건 아니다.
고천원인에게도 일찍이 열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던데 현실에 적응하듯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고천원에서도 열도 역사 기억은 잊혀버렸다.
누구든 고천원이 처음부터 일본국과 여겨 있다. 애초에 열도가 없어도 고천원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지 수 있던 것처럼... . 그럴 리가 없다!
"나한테는 이는 진짜 독립이 아니야. 아마 스페인에서 독립한 아메리카 나라에서 권력은 차지한 이는 원주민이 아니었던 것과 비슷하다."
그때마침 큰소리로 외치던 줄 알게 되어서 쿠라타는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걱정스러워졌다.
바깥에 들리면 역사를 둘러싸고 엄청난 의논이 터져야 한다.
입을 연 채 어둠깜깜한 밤과 거기서 떠 있는 별을 들여다보다 쿠라타는 천천히 한가로워졌다.
그래. 아무도 역사를 알아맞힐 수 없다.
"기다리자. 잠시 기다리면 두 나라가 통일될 때가 올지도 몰라."
"통일? 그럴 리가 없다." 오오마에는 냉담히게 답했다.
그래도 쿠라타에게는 천만의 말이 아니었다.
"피로 가득한 한 달 전, 모두가 대한민국과 북한이 영원히 반도를 쪼개는 것으로 여겼잖아. 언젠가 이 분단을 끝내는 사람이 나타나겠어."
결국 이건 희망이다. 다만 희망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없다.
그러고 나서 둘은 조명을 껐다.
고요한 밤. 환한 달. 평화로운 광경에 틀림없다. 아니, 평화로운 광경이 오히려 오오마메의 마음에 불안을 초래했다.
혹시 저 총성이 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더니 나도 모르게 오오마에는 신에게 빌고자 했다.
오오마에는 로켓을 열어 속에 새겨진 새파란 머리카락의 여자애를 보았다. 하츠네 미쿠. 그녀는 여러 곳에서 언제나 줄곳 고천원의 지켜보았다.
이 여신이 어디거 왔는지, 과연 일본에 비롯한 문화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핵전쟁이 일어지기 전에 북해도에 나타난 어떤 여자애였다고 학자들은 하는데 이제 그걸 증명하는 자료는 없다. 쿠라타가 샅샅이 읽은 사전에도 노래를 잘했다는 전설 밖에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고천원 국민은 그게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그녀를 이웃에 있어주는 것으로 믿어서 여러 고생에 견디었다.
오오마에도 그 전통에 따라 소녀에게 낮은 소리로 중알거리면서 기도를 시작했다. 쿠라타도 이 기도에 참여하듯 그 말을 되풀이했다.
이 고요하고 무시무시한 밤을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다음날, 둘은 동네를 걸었다. 언제와 비슷한 훤소가 역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자연이 그 뒤로 숨어 웅장하게 앉아 있었다.
활기찬 모양으로 평화를 즐기며 백성을 보면 기뻐할 수가 있다. 하지만, 쿠라타는 안타까운 감정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노구나 나와 조상을 공유할 수 있으니 아무런 공통점도 발견할 수 없는 것에 소침이 끼쳤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다른 감각에 청년의 의식이 빼앗긴다. 전쟁 때도 그렇지만 이 섬에 와다 느낀 것은 애상만이 아니다.
추운 바람. 금속이 녹슬어버리는 바람인데 인자한 구름을 가져와주는 바람. 그리고 조용히 내리는 햇빛. 왠가 쿠라타는 이 독특한 감각이 좋았다. 여기 있으면 자신이 역사 등장인물 하나가 된 느낌이 난다.
전쟁 중도 긴장을 풀도록 이 바람 속에 맡기더라고... .
"오랜만이에요, 요시히코 씨!"
빨간 모자를 입고 안경을 쓴 남자애가 가까워해서 인사했다. 쿠라타는 곧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잘 커졌구먼, 상남군."
그 이름은 죽상남(竹尙男). 상남의 아버지와 함께 이 섬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고로 그 아들과도 쿠라타는 사이가 좋았다.
오오마에는 얼굴을 엿보았다.
상남은 설명했다.
"사어천(絲魚川)에 공부하러 갔는데 오랜만에 돌아갔거든요. 이로부터 율도에 머물어 알아보고자 해요."
"그런데 왜?"
"사어천에 살려고 했는데 요즘 율도에도 찾아야 할 것은 많을 줄 알았으니까요."
"어떤 것이 들켰나?"
"고고학 조사로 일본 시대 모양이 밝혀졌네요.더불어 단도 시대는 역사 연구에 엄한 제한이 있던데 이로부터는 그것도 사라졌기에 자유로이 발표할 수 있는 시대이니까요. 그러니까 고고학자가 되고 싶은데요."
"고고학자?"
"맞아요." 남자는 그 낱말이 나자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전쟁이 끝난 덕분에 책을 자유로이 읽을 수 있게 되니 단도정부가 출판을 금지한 책이 잇따라 출간되었어요. 그걸 다 읽는데 아주 긴 사간이 걸릴 거예요."
열심히 꿈을 털어놓는 모습이 내리쬐는 햇빛처럼 맑았다. 한순간 쿠라타에게는 그 남자가 같은 일본인으로 보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오랜 역사에 대해 틀린 지식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에는 많아요. 저는 그들의 오해를 고치고 이 나라의 발전을 돕고 싶어서요."
쿠라타는 미소를 지우며,
"기대해."
"고마워요, 할아버지." 소년은 기뻐했다.
"상남아, 여기서 있나?" 그때 쿠라타에게 정말로 그리운 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들어서 약간 살이 빼더니 그 모습을 잘못 볼 수가 없었다.
이제 나타난 남자는 둘을 인정하자마자 환하게 말했다.
"아이고, 못 본 새 어떻게 지냈나요?"
상남의 아버지 죽승재(竹勝在)가 와서 친하게 인사를 했다.
"잘 지냈어. 나도 이놈도 아픈 기억을 지우는데 정말 애를 썼더라."
오오마에가 쿠라타 대신에 말했다.
"말도 안 돼. 우리는 이 아름다운 섬을 즐기 위해 있잖아."
"맞아. 이 섬이 아름답기에 혼이 난 것을 떠올리지?"
승재는 고소하며 오오마에와 쿠라타 표정을 들여다보았다.
"당신들이 건강하게 살고 계시는 게 기뻐요."
둘과 승재는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둘이 속으로 아직 피곤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들 앞에서는 같이 공감하는 초췌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제까지 단도 노예였더니 지금은 해동이라는 독립한 나라 시민으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네요."
"전 꿈에 대해 보다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빠." 상남이 유인했다.
잠시 후 소년이 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에 대해 주로 의견을 나뉘게 되었다.
"아들의 꿈을 거부해서는 안 되니까요."
웃었다. 하지만 쿠라타에는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상처는 어때?"
아버지는 둘에게 팔을 보였다. 총알을 맞은 탓에 상처가 아직 작게 남아 있었다.
"걱정 마세요. 아주 가벼운 상처예요." 미소를 지우며 답한 승재.
"때때로 전쟁 기억이 떠오르긴 해요. 모두는 전쟁을 잊은 척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렇잖아... ."
오오마에가 말했다.
"고천원과 마찬가쟈. 우리나라에도 마음이 싸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놈이 많거든."
상남은 그들의 고민을 축은해서 슬픈 표정을 띠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초라해지 못하도록,
"그런 데..., 모든 것은 끝난 일입니다. 그저 해동과 고천원의 우호를 벼요."
"상남군이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죠?"
"글쎄요. 아들내미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반대하지 못하는데... ."
전쟁 중 역사 등 전투나 살아남기가 아닌 것에 대해 승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누구나 애를 쓰기만 했기 때문이다.
승재 조상도 일본국 국민이고 가끔 단도 정부에 극심하게 저항하기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느 시점에서 현실에 타협해서 계림인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쿠라타는 진짜 뜻을 털어놓지 못했다.
결국 이에게도 과거 역사와의 연계를 가지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세 사람은 다시 보자고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온순한 얼굴이 쿠라타에게는 깊이 환했다.
꼭 이런 이가 앞날을 엶에 틀림없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쿠라타는 무엇이나 나아지리라 여기지 못했다.
여태 단도라는 적이 있어서 힘을 합쳐 싸울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단도는 없다.
열도인과 반도인의 싸움에 이 소년도 흽쓸릴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상상해내는 자신도 두렵다.
하지만 모든것은 가능성일 뿐이다. 그리고 이 젊은이에게 미래로의 중압을 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남과 헤어진 후, 잠자코 회화를 듣던 오오마에가,
"저 남자애는 힘이 찼잖아?"
"그놈이 나의 뜻을 이으면 돼. 나는 옛날 꿈을 이루려면 충분히 늙었네. 젊은이에게는 남겨야 하니까... ."
물론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쿠라타도 알고 있었다.
새삼 쿠라타는 눈앞에 트인 풍경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제를 흐르는 공기에.
국경이 바뀌어 국명이 바뀐다 해도 의연하게 같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부지불식으로 스페인의 어떤 시를 응얼거렸다.
"하늘도 땅도 나에게 미소를 짓네. 해가 나의 넋 바닥에 오네.
오늘 나는 그녀를 보고서 그녀도 나를 보노라. 나는 오늘 하느님을 믿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