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의문
아이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이름이 가장 멋져?"
ㄹ-113가 먼저 말했다.
"내 이름이 더 큰 숮자잖아."
ㅇㄱ-13이 소리를 질렀다.
"내 이름이 더 세."
"내 이름이야말로 센 이름이야. 무엇보다도 소수라니까."
아무도 옛날의 인간 이름을 갖지 않는다. 그런 것은 노예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왜 노예 따위의 이름을 갖을 필요가 있느냐?
옛 세상이 주민이 아닌 인간은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새로운 장난감을 얻게 됐단 말이야. 뵈줘."
"보구싶어!"
그들은 달렸다. 아마 유성처럼 공간을 잘라 멀리 떠났다.
일찍이 가지던 육체와 완전히 달랐다.
여기선 인간은 아무런 제한도 없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가 있다.
모두가 하늘 위에 흩어진 별처럼 빛나는 세상에 살고 있었다.
건물도 길도 이제는 조재하던 것과 달리 정말로 있는 게 아니었다. 전자 신호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기 때문이다. 인격조차 0과 1의 구성에 그냥 옮겼다.
무엇보다도 분명한 겉모양을 지니고 있지 않는다. 파도처럼 흔들리며 반짝거리는 우주 안을 헤엄치고 있었다.
죄다 컴퓨터에 얽매였다. 일찍이 누구나 싹기 쉬운 육체에게 얽매이던 것처럼.
그래도 그런 안에서 인간다움에서 풀려나오고자 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다운 이름을 지우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 건 더러운 기계인형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하얀 틈을 달리고 있었다.
줄과 같은 모습으로 쏜살같이.
'육체를 안 갖는 게 가장 좋다'라는 생각에 따라서 인간은 이만큼 벌레 양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 얽매임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편안하게 살고 있었다.
"뭐 먹을래? 뭐 마실래?"
하루하루 누구나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있었다.
ㄹ-311은 이 살림에 만족했다.
아침에는 해가 올라서 따뜻한 빛을 날마다 보내준다.
밤에는 달이 아름답게 땅에 비치기 마련이다.
히자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에게는 있었다.
벽에 시계가 걸려 있다. 가는 바늘이 위에서 영원히 돈다.
이 시계는 시간을 가르쳐준다. 이 도시에는 개념이 없다. 어제도 내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오늘만 이어진다.
잠자코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건 어떻게 지어졌을까?"
무슨 수로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있는지 애초에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 이 세상에 끝이 있는가?"
게다가 왠가 모르겠지만 자신이 일찍이 딴 사람으로 살았다는 느낌도 났다.
그때마침, 처음으로 남자애는 무섭다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이 언제까지나 있을 리가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기계인형에도 언젠가 초라해지고버림받는 순간이 온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우리 인간은 인터넷 안의 살림에 편안함을 느낀 나머지 어느덧 의문을 지니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것에 대해 털어놓으려는 사람이 누구인자 좀처럼 밝혀지지 못했다.
이 의문이 남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확신만 강하게 머리속에 새겨졌다.
가족도 친구도 그 남자의 의문을 몰랐다.
어떤 남자애에게 그는 말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살겠을까?" 순수한 의문.
"언제까지?"
상대 남자애는 의심스럽게 했다.
"생각할 필요는 없어, ㄹ-311. 어른들이 말씀하셨잖아. 동일한 나날이 줄곳 이어지는 게 가장 좋다고. 우리 조상은 동일한 나날을 누릴 수 없어서 힘들어했대."
주저없이 털어놓았다.
"교과서엔 그렇게 적혔는데, 어떻게 알아보게 됐는지 궁금해."
하지만 상대는 냉담한 답.
"이걸, 더 이상 하지마. 만일에 행정부 귀에 들면 이끌릴 것이고."
결국, ㄹ-311은 자기 의문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
지금 빛의 세상에는 인간이었을 줄 모르는 이만 있을 뿐이다.
같은 날이 이어지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행복을 위해 그렇게 인류를 만들어 마땅하기 때문이고.
그런 과거가 있었던 건 물론 알려져 있지 않는다. 보통 시민은 행복을 즐거워하면 된다.
정부는 과거에 대한 갖가지 기억을 시민에서 다 지웠다.
먼 옛날의 역사를 아는 인간은 도시 행정을 다스리는 자만이다.
그런 상황에 싫증이 난 것이다.
이 빛의 세상에서는 지난 시대에 대한 것은 다 미련한 것으로 여겨져 있다.
"기계인형이 우리를 돕게 될 때까지 우리 조상은 육체에 얽매여 살더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ㄹ-311이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들은 이야기에 대한 불신감을 고백했다.
ㄹ-311은 몇번이나 고민한 후 이 비밀을 털어놓는데 어울리는 사람을 발견했다.
마침내 친한 친구인 ㅇㄱ-13에게 전부 알리기로 했다.
ㄹ-311이 ㅇㄱ-13에게 마음껏 의문을 내던졌다.
"나는 알고 싶어."
"뭐?"
"우리가 어디로 갈 거야? 이 세상은 늘 존재할 수가 없을 텐데."
"자네, 뭐 하고 있느냐?"
"이상하기 짝이 없는 거야. 나는 먼 옛날에도 학교를 다니던 것 같아."
"우리 노예인 기계인형에게 관리를 맡겨. 그런데,
"설마... ." 겁을 먹은 양 ㅇㄱ-13 표정이 바뀌게 된다.
"컴퓨터를 관리하는 건 기계인형이야. 그들이 너희들을 거스르면 무엇이 일어날까?"
"이 도시 살림이 이어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고?"
"나는 믿고 싶잖아. 그래도 믿을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야."
이어서 동료는 말했다.
"그러면 긱계인형은 지배자가 될 거야. 그때부터는 망가지기 만하겠어. 인간 같은 오류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음에 틀림없어."
그런데, 이야기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느덧 무서워 보이는 그림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너희들, 뭘 도모하느냐?"
나도 모르게 ㅇㄱ-13은,
"아,아니에요. ㄹ-311이 저한테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
ㄹ-311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으리라 오해하지 않도록.
ㅇㄱ-13은 그저 덜덜 떨었다.
아이와 달리 어둡게 짙은 빛으로 번쩍거리는 그림자.
그들은 행정부의 감사관.
"너는 도시 법률을 거슬렀다. 심판을 받아야 한다."
감사관에게 한구속에 내몰린 ㄹ-311은 겨우 저항하려고.
"아, 아니에요! 저는 흥미로운 일을 풀어보고 싶을 뿐이죠!"
"그게 엄청난 짓이란다! 도시에 한 사람이라도 질서를 위협하는 분자가 있으면 안 된다!"
어느덧 들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모두가 빛나며 인간이 아닌 모습이었다.
"기계인형에게 인격을 옮겨서 바닷속에 보내야 해."
"시, 싫어!" ㄹ-311은 외쳤다.
"이런, 작은 아이를 왕따시키면 안 돼. 호기심을 억지로 없앨 수는 아무에게도 할 수 없어."
누군가가 가운데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인간이 다시 노예다움을 되찾을 수가 있으리라 여기나?"
낮지만 무거운 힘을 담아서 그 소리는 백성에게 들렸다.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ㅎ-13 씨?"
ㅎ-13은 그동안 사납게 소리치던 백성을 이상한듯 보았다.
"아까 왔지. 너희들이 떠들석하게 이야기하니까 보러 온 거야."
"그 아이를 풀어라. 난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거든."
문책하던 그들은 싫은 표정을 보이면서도 억지로 ㄹ-311을 풀어 흩어졌다. ㅇㄱ-13은 아직 의심스러운 표정을 띄우면서도 결국 그 자리에서 떨어졌다.
그들이 떠나가더니 ㄹ-113이 ㅎ-13에게 걸어오다 물었다. 그에게 ㅎ-13은 드물게 도시에 오다가 다양한 일을 가르쳐주는 교사였다.
"다행이 비극을 피했구나. 니가 알면 그들이 뭘 하겠는지 모르겠으니까."
"저는 아주 궁금해요. 우리 인간은 사라질 수 밖어 없는지. 어디로 가겠는지 알고 싶습니다."
인자한 미소.
"멸종이야. 하지만 걱정 마. 네가 그 순간을 맞이할때는 안 오겠어."
알 수 없는 이에게 맞은 것 같은 총격이 덤벼들어왔다. 그래도 그 공포는 한순간 후에 가셨다.
이제는 의심스러움을 지니던 이유를 잊었다. 어리석고 순수한 아기에 돌아갔다.
"인간은 기계인형보다 더 위대하다. 알겠니?" 미소를 지우며 ㅎ-13은 물었다.
"맞아요, ㅎ-13 씨."
ㄹ-311은 잊어버렸다. 자신이 줄곳 지니던 온갖 의문을.
ㄹ-311은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어둠속에 떠났다.
"자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야. 언제나처럼 기쁘게 살면 되네."
몹시 작은 소리로. 이제는 즐거운 얼굴이 아니었다.
ㅎ-13은 처음으로 남자애를 문책한 인물을 향해 가까워했다.
"선현. 저 남자를 정말 똑똑하게 여기잖아?"
그는 황선현이라는 이름이었다.
"인간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마. 지금 나는 ㅌ-9야."
화가 난 소리로.
"화를 내지 마. 예부터 친구잖아?"
"친구였던 것은 예전 일이야. 넌 인간인데 우리와 달리 기계인형과 같아지는 걸 택했어. 우리와 이제는 달라진 생물이야. 왜 이제 나를 보러 왔나?"
"여기서 고백하는데는 어울리지 못한 일이야."
이제 밤속의 반짝거리는 도시 모양을 바라보면서 두 사람이 이야기했다.
"참 위험할 뻔했어. 만약에 그놈이 진실을 알면 위태로워지겠어. 어떻게 기억을 지운거야?"
"난 도시 인간과 존 다른 인공지능이니까. 인간 추억에 간섭하기는 쉽지."
선현은 오로지 자기 의견을 버리지 않았다.
"ㄹ-113은 위험한 아이야. 그를 놓지면 이 도시가 위태로워지기 십상이야."
"너도 옛날 그놈 같았어. 그 아이도 진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밖의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겠어."
"그걸 슬퍼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인간을 그만둔 신이니까."
신. ㅎ-13은 태연하게 그러는 그가 우스웠다. 이리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는데 어직도 신이라는 개념에서 풀려나갈 수가 없다니. 게다가 ㅎ-13은 먼 옛날에 생각을 떠올렸다.
스메르 신화에 따르면 신이 사람을 노예로서 만들었단다. 지금, 사람은 신이 되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들었다.
그것이 잘못이든 옳았던 일이든 사람은 위에도 아래에도 제 아닌 존재를 지어서 안심하고 싶어하는 미련한 생물이다.
ㅎ-13은 말했다.
"기계 인형이 다음 신이 될 뿐이야."
미간을 찌푸리며,
"누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그러는구나. 그만 그리 재미없는 이야깃거리로 시간을 죽이자. 그래, 신도쿄에 갔을 때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줘."